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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뉴스> 위유미 원장 칼럼, 체면의 함정
23-08-16 22:26관리자28회
후배 A는 요즘 9월초에 오픈할 커피 매장 인테리어 공사에 열중이다. 겨우 두 평 남짓하니 테이크아웃만 할 것이라고 하면서 계속 손바닥만 하다고 말한다. 네 손바닥이 그렇게 크냐며 농담을 해도 표정은 밝지 않다. 스스로 폼 잡기 좋아한다는 그녀는 손바닥만한 매장에서 장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 속상하고 자존심 상한다고 한다.

프렌차이즈도 아니고 평수도 작아 볼품 없는 커피점을 하려니 사람들이 뭐라고 할지 신경이 쓰인다는 것이다. 본인 표현처럼 손바닥만 할지라도 중년의 나이에 용기 있게 시작한 것은 누가 봐도 부러울만한 일이고, 작은 매장이라 비용도 적게 들고 알차 보이니 실패를 염려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고 격려해 보지만 당사자는 귀담아 듣지를 않는다.

경제활동을 해야 할 형편에 자신이 감당할만한 적절한 점포가 생겼으니 오죽 좋으랴만 여전히 그놈의 체면이 그녀를 힘들게 하고 있나보다. "'‘호랑이가 시장하면 코에 묻은 밥풀도 핧아 먹는다'던데 아직도 체면 따지는 것 보니 발등에 불 떨어진 건 아니구나"라고 하니 풀죽은 소리로 그런가보다 라고 대꾸한다.

그 체면타령은 언제쯤 끝날지 모르겠지만 이미 결정한 일에도 자신감은커녕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을 보니 안타까울 뿐이다. 그렇다고 체면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그녀를 전혀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나 또한 체면으로부터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체면(體面)은 다른 사람한테 보여지는 이미지다. 사람으로서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예의나 예절을 지킴으로서 긍정적인 이미지를 얻고 싶어하는 욕구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볼 때 체면은 사회생활을 잘하기 위해서는 적당히 지켜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적당히가 어렵다. 내 체면을 지켜야 하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의 체면을 지켜줘야 할 경우도 있어서 체면을 지키는 것과 이성적인 결정 사이에서 갈등을 겪기도 한다.

몇 년 전 한 지인은 자신의 조카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니 안 한 것이 아니라 혼주가 참석을 원하지 않아 가지 못했다고 한다. 이유는 사돈댁이 내노라 하는 집안인지라 그 댁 수준에 맞추려고 하니 혼주인 자신의 체면을 생각해서 참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양해를 구하더라는 것이다.

자신의 사는 형편이 체면을 깎이게 할만큼 형편없는 모습인가 싶어 기가 막혔다고 했다. 그 일 이후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컸던지 지금까지 소원한 관계로 지낸다고 한다. 요컨대 어떤 상황에 처하면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상대방의 체면 때문에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일들이 있다.

흔한 일은 아니겠으나 이러한 일을 겪다보면 잘못된 체면문화 때문에 정작 중요한 관계를 잃게 되고 당사자는 이유없이 주눅이 들기도 한다. 진실성은 없이 과장되게 겉치레에만 신경을 쓰게되면 알맹이 없는 관계가 되는 것은 뻔한 일 아니겠는가. 결과적으로 체면을 차리는 일이 심리적으로 어떤 압박을 주는지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사회는 유난히 체면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전통적으로 유교문화의 영향을 받아 예절을 중요하게 여겼고,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의리를 목숨처럼 여겨온 정서도 한 몫하고 있다.

또한 사회적 지위를 얻거나 유지하기 위한 목적이 있어서 일상의 대화에도 체면때문에 해야 할 말 ,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잘 분별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관계가 체면을 저버리고 살 수는 없으며, 세대가 바뀌었다고 해도 아직도 우리 문화는 체면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체면과 관련하여 ‘수염이 대 자라도 먹어야 양반’이라는 흔한 속담이 있다. 외견상 양반이라도 먹어야 사람노릇을 하는 것이지 먹지 않고 허세를 부리면 무슨 소용이 있냐는 것이다. 남의시선이나 체면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욕망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체면 때문에 거절하지 못하는 일은 또 얼마나 많은가. 자칫 가족과의 불화를 겪기도 하고 주변인과의 갈등이 깊어지기도 하여 스스로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하니 체면이야말로 과유불급인 것이다.

체면은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중요한 자질이기도 하고 인간관계에 필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체면에 의한 삶은 자신의 삶이 아니다. 타인의 시선에 의한 기대를 과도하게 고려하여 일을 추진하거나, 후배A 처럼 다른 사람 시선 때문에 소심해지는 체면 정도는 떨쳐버려야 한다.

어떤 관계이든지 도리를 지키면 된다. 적당한 경계를 알고 타인을 존중하는 것이 진정 내 체면을 지키는 길이며 타인의 체면을 존중하는 가장 바람직한 태도이리라.

출처 : 우리뉴스 (http://www.woori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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