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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뉴스> 위유미 원장 칼럼, 기억의 무게 그리고 친구
23-09-12 22:40관리자22회
혼자서 자주 가는 커피점이 있다. 그곳은 손님이 많지 않아 조용하고 책읽기에도 좋은 곳이다. 그날도 책을 읽다가 마침 뒤에서 들려오는 대화내용이 특별해서 주목하게 되었다. 70대 중반은 되어 보이는 두 여성이 나누는 대화였다.

우리가 거길 갔다고?
누구랑 갔어?
내가 그랬다고?
왜 기억이 안나지?
그랬구나!

들리는 대화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아마도 몇 년 전 친구 몇 명이서 울릉도로 여행을 갔었나보다. 한 분은 아주 상세하게 같이 여행한 사람들, 여행 중 있었던 에피소드를 설명하는 반면, 다른 한 분은 기억이 안 난다는 듯 계속 질문을 했다. 이런 모습으로 보아, 필시 한 분이 치매의 초기증상을 앓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의 대화는 점점 더 구체적이 되어갔다. 딸의 출산과 함께 한 추억까지 언급했다.
“여행 마지막 날 네 딸 00가 분만예정일이 보름 후인데 갑자기 양수가 터졌다고 연락 와서 너 혼자 급하게 올라갔잖아! 네가 서울 도착 전에 순산했다는 연락받았다면서 우리에게 전화해줬는데 기억 안나?”

하지만 기억을 상실한 여성은 외손자 출산 날만 기억할 뿐 다른 추억들은 잊어버린 듯 했다.

그녀의 친구는 열심히 과거의 추억을 되살리려 애써보지만 친구의 노력과 달리 기억하는 것도 있고,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 의식은 명료한데 기억을 못하다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인간은 누구나 생노병사의 과정을 겪는다. 개개인의 경험은 다르나 모든 사람은 신체의 변화와 함게 질병에 걸리기도 하며 육체적 한계에 다다르기도 한다. 이런 자연스러운 과정은 누구라도 벗어날 수 없으며 우리가 다 겪어야 하는 문제이다.

이렇게 늙고 병든 과정을 거치는 동안 누군가는 도와야 하고 누군가는 도움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다. 특히, 치매가 진행되는 과정에는 다른 질병보다 더 섬세한 지원과 돌봄이 필요하다고 한다.

가족의 일원이 아니면서도 때론 가족보다 더 친밀할 수 있는 친구가 환자의 변화를 지켜보고 함께하는 모습은 실로 감동이었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오래된 친구만큼 서로의 가치관과 경험이 어떤 것인지를 잘 이해할 사람이 있을까?

설령 잊혀진 기억들이 되살아날 가능성은 없다할지라도 기억의 혼란에 빠진 친구를 사려깊게 보살펴주는 또 다른 친구의 모습은 인간관계의 깊이와 진정한 우정의 본질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일상의 시간이 멈추었을지라도 연약해진 삶을 돕는 사람이 나의 친구라면, 친구 그 존재만으로도 얼마나 큰 위안이 될 것인가.

현대사회는 과거보다 더욱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들에 직면하고 있다. 시대의 변화는 개인주의를 증가시키고 친구들 간의 관계도 경쟁과 성공에 대한 압박으로 서로를 분리시키기도 한다. 이런 환경에서 우정보다는 자기보호와 생존이 우선시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과거에 많이 알려진 미담처럼 친구를 위해 희생하는 것을 부적절하거나 무모한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이렇듯 시대의 변화만큼 우정의 의미도 달라진다고 하지만 뜻밖의 장소에서 우정이라는 말이 터무니없지 않음을 확인한 셈이다.

존 에디슨은 ‘사라진 시간조차도 잊혀지지 않는 진실한 친구가 있다면 인생은 아름답다’고 했다. 나도 그런 친구 하나쯤 갖고 싶은가? 이런 소망을 이루는 가장 좋은 방법은 먼저 스스로 그런 친구가 되어 보는 것이다.

출처 : 우리뉴스(http://www.woori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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